퇴직 준비 중 몰래 했던 재정 점검과 소비 습관 바꾸기
퇴직을 고민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나는 자연스럽게 ‘돈’에 대한 걱정이 뒤따랐다. 아무리 감정적으로는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도, 현실적으로는 생계라는 벽을 넘을 수 없었다. 특히 매달 고정적으로 들어오던 월급이 끊기는 상황을 상상해 보니, 어떤 결정을 내리기에도 앞서 재정 상태를 점검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퇴직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꺼내기 전에, 조용히 개인 통장과 지출 내역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퇴직을 말하기 전, 퇴사서를 내기 전, 먼저 내 가계부를 열어보는 일이 첫 번째 준비였다. 지금 당장 퇴사했을 때 생활비가 얼마나 필요한지, 내가 가진 자산은 어느 정도인지, 예상보다 구체적으로 정리해 보니 현실감이 달라졌다. 감정이 아닌 숫자로 보는 삶은 훨씬 냉정했고, 동시에 명확했다.
특히 놀라웠던 건, ‘나는 그럭저럭 검소하게 산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분석해 보니 생각보다 많은 돈이 불필요하게 새어나가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커피값, 배달비, 스트리밍 서비스, 자동결제 항목 등 사소한 지출이 모여 한 달에 수십만 원에 달했다. 그래서 나는 퇴직을 준비하는 동안, 사람들 몰래 소비 습관을 전면적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감정적으로는 회사를 빨리 나가고 싶었지만, 재정적으로는 준비가 더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퇴사 준비의 핵심을 ‘탈출’이 아니라 ‘생존 전략’으로 전환했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돈’이 있었다.
지출을 하나씩 뜯어보며 알게 된 나의 소비 패턴
가장 먼저 한 일은 고정비 정리였다. 월세, 통신비, 보험료처럼 매달 나가는 비용들을 정리하고 줄일 수 있는 항목을 하나씩 체크했다. 휴대폰 요금제는 과도하게 넉넉한 데이터를 쓰고 있었고, 실상 필요하지 않은 보험도 몇 개 있었다. 이 항목들만 조정해도 매달 15만 원 이상 절약할 수 있었고, 이건 퇴사 이후 1~2개월 치 생계비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그다음은 변동비였다. 커피, 외식, 쇼핑, 교통비 같은 항목들을 1개월치 카드 내역으로 전수조사했다. 그리고 알게 됐다. ‘스트레스를 소비로 풀고 있다’는 패턴 말이다. 회사를 다니며 힘들었던 감정을 외식이나 쇼핑으로 보상하곤 했고, 그 지출이 익숙한 습관처럼 굳어 있었다. 하지만 퇴사 이후에는 수입이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런 감정 기반 소비는 반드시 고쳐야 했다.
그래서 나는 지출을 줄이는 것보다 먼저, 소비의 ‘이유’를 바꾸는 데 집중했다. 예전에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무조건 커피를 사 마셨다면, 이제는 그 순간에 물을 마시거나 잠시 산책을 하는 식으로 대체 행동을 만들었다. 그리고 소비 전엔 ‘이건 생존을 위한 소비인가, 감정을 위한 소비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이 단순한 질문 하나로 불필요한 소비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또 하나 바꾼 건 자동결제 정리였다. 그동안 생각 없이 결제하던 온라인 서비스, 앱 구독, 스트리밍 등을 모두 정리하고, 정말 필요한 것만 남겼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한 달 기준으로 약 25만 원의 지출이 줄었다. 단순히 돈을 아끼는 차원이 아니라, 소비를 통제할 수 있다는 감정적 주도권이 생겼다.
재정 점검을 통해 계획할 수 있었던 ‘퇴사 후 생존 전략’
지출을 줄이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퇴사 이후의 ‘생존 플랜’을 세울 수 있었다. 내가 가진 자산으로 몇 개월을 버틸 수 있는지, 그동안 어떤 방식으로 수입을 만들 수 있을지 계산해 봤다. 예상보다 보유 현금은 많지 않았지만, 소비 패턴이 바뀌면서 1개월 생계비가 35%가량 줄어든 상태였다. 이 덕분에 나는 퇴사 후 최소 6개월 정도는 별도의 수입 없이도 버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리고 이 6개월이라는 시간은 ‘막연한 두려움’을 ‘구체적인 기회’로 바꾸는 데 충분했다. 나는 이 기간 동안 개인 블로그를 시작했고, 온라인 강의와 재택근무 가능성 있는 부업을 찾기 시작했다. 수입이 적더라도 생활비가 통제되는 상태라면, 돈의 흐름을 내가 주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퇴사 준비 중 가장 중요했던 건 ‘계획 가능한 재정 상태’였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나 실행력이 있어도, 매달 고정적으로 빠져나가는 생활비에 발목이 잡힌다면 결국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정리했다. “생계비를 줄이는 것은 단순한 절약이 아니라,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출을 통제하면서부터는, 회사에 다니지 않아도 불안에 휘둘리지 않는 감정적 여유가 생겼다.
퇴직을 현실화하고 싶다면, 숫자부터 마주해야 한다
지금 퇴사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의 감정보다 숫자가 먼저’라는 것이다. 무조건 감정적으로 회사를 뛰쳐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현실로 바꿀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그 조건은 단 하나, 지금 가진 돈과 앞으로 필요한 돈을 파악하는 것이다.
나는 퇴직 준비 중 ‘재정 점검’이라는 행위를 단순히 돈 계산으로만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 과정은 나의 삶의 구조를 뜯어보는 일이었고, 그 구조 속에서 나를 통제하던 불필요한 소비 패턴, 의미 없는 구독 서비스, 감정 기반의 지출을 걷어내는 일이었다. 그 결과, 나는 훨씬 가볍고 명확한 상태에서 퇴사를 결정할 수 있었다.
모든 준비의 시작은 숫자였다. 그리고 그 숫자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용기가 있었기에, 나는 퇴사라는 인생의 큰 결정을 실행할 수 있었다. 단순히 통장 잔고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유지하는 데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본 시간이었다.
퇴직을 진지하게 준비하고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개인의 재정 상태를 점검해 보기를 권한다. 그건 회사를 그만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삶을 다시 설계하기 위한 필수 절차다. 결국 퇴사란 새로운 출발점이고, 그 출발은 준비된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그 준비의 시작은 단 하나, 지출과 소비를 내 손으로 통제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