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준비 중 알게 된 회사의 민낯 – 인간관계의 현실
퇴직을 결심한 이후, 가장 먼저 달라진 건 업무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그동안 매일 함께 일하던 동료들의 말투, 표정, 반응이 조금씩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물론 퇴직 결심을 공식적으로 밝히기 전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알고 있었던 건 아니다. 그런데도 내가 느끼는 이 변화는 분명했다. 아마도 나 자신이 이미 마음속에서 조직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동안 무심히 넘겼던 말과 행동들이 훨씬 선명하게 다가온 것 같다.
이 시기부터 나는 회사를 단순히 ‘일하는 공간’이 아닌 ‘관계의 구조’로 보기 시작했다. 누구와 친했고, 누구와 거리감이 있었는지, 누구의 말에 내가 민감하게 반응했는지 스스로 되돌아보게 됐다. 특히, 퇴사를 고민하던 시기에는 동료들의 존재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위로를 받고 싶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련 없이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를 놀라게 한 건, 내가 퇴직 준비를 시작한 이후 마주한 회사 인간관계의 민낯이었다. 동료들이 아닌 나 자신조차도,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역할로 존재하고 있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조용히 퇴직을 준비하며 겪은 관계의 온도차
퇴직 의사를 밝히기 전까지 나는 최대한 조용히, 평소처럼 지내려 애썼다. 퇴사에 대한 힌트를 남기지 않기 위해 회식이나 잡담 자리에서도 늘 평정심을 유지했고, 대화 주제 역시 업무 중심으로 맞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감지해냈다. 내가 예전보다 말수가 줄어든 것, 소소한 회사 이슈에 크게 반응하지 않는 것, 미래 계획에 대해 말을 아끼는 것에서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느낀 듯했다. 가장 가까운 팀원 몇 명은 “요즘 좀 다르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건네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는 관계에 대한 기대치를 점점 낮추기 시작했다. 평소 잘 지냈던 동료조차 내가 퇴사한다는 걸 알고 난 뒤에는 미묘하게 거리를 두는 느낌을 받았다. 반대로 평소 별로 교류가 없던 직원이 갑자기 친근하게 다가오는 일도 있었다. 누군가는 나를 부러워했고, 누군가는 나를 현실도피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직접적으로 부정적인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말과 표정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회사라는 공간이 인간관계를 유지해주는 커다란 프레임이었다는 걸 그제야 실감했다.
그리고 더 흥미로운 점은, 내가 회사를 나가겠다는 결정을 내리자 사람들이 더는 나를 ‘우리’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마치 ‘곧 떠날 사람’이라는 범주에 나를 구분하고, 한 발짝 물러서는 듯한 반응들이 많았다. 이건 상처라기보다는 현실이었다. 조직은 언제나 이탈자를 경계하고, 내부 결속을 유지하려는 속성을 가진다는 걸 이번 퇴직 준비 과정을 통해 분명히 느꼈다.
퇴사 직전이 되자 사람들의 진심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퇴사일까지 3주 남짓 남았을 무렵, 나는 공식적으로 퇴사 일정을 공유했다. 그제서야 주변 동료들이 하나둘 다가와 말을 걸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진작 말해주지 그랬냐”며 아쉬움을 드러냈고, 어떤 이는 “나도 늘 고민 중이었다”며 공감을 표했다. 하지만 이런 반응들 속에서도 나는 또 다른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퇴사를 알린 이후 생기는 거리는, 퇴사를 준비할 때 생기는 거리보다 훨씬 명확하고 깊었다. 팀 회의에서 내 의견에 대한 반응이 줄어들었고,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업무들이 조용히 분산되기 시작했다.
물론 그 변화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회사를 나가는 사람에게 더 이상 책임을 지울 수는 없으니, 조직도 대비하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그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나는 퇴사 전까지도 끝까지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했지만, 팀은 이미 나 없이 돌아가는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었다. 회사를 떠나는 사람에게 남은 사람들은 적당한 거리 두기를 하려 한다는 사실을, 그제야 완전히 체감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마저 점점 조심스러워졌다.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던 동료가 어느 날부터 업무 외 대화를 줄였고, 함께 퇴근하던 친구는 점점 회피하듯 먼저 자리를 떴다. 처음에는 섭섭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그 거리를 인정하게 되었다. 퇴직 준비는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분리의 연습’이었다. 억지로 붙잡지 않고,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관계를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진짜 퇴사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퇴직 준비는 관계를 정리하고 나를 재정비하는 과정이었다
퇴직을 준비하면서 나는 인간관계의 민낯뿐 아니라, 그 안에 숨어 있던 내 감정들도 마주하게 되었다. 사람들과 얼마나 가까웠는지, 어떤 감정이 있었는지보다도, 내가 그 관계에 어떤 기대를 했는지가 더 중요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실망은 기대에서 비롯되기 마련이다. 나는 퇴직을 준비하며 타인에게서 기대를 줄이고, 그 기대를 스스로에게로 돌리는 훈련을 시작했다. 퇴사 직전의 시기는 관계 정리의 시간이었다. 누가 진짜 내 편이었는지를 판단하는 시간이 아니라, 누구와의 거리를 어떻게 유지해야 나를 지킬 수 있는지를 깨닫는 시간이었다.
관계를 정리하고 나니 의외로 마음이 편해졌다. 회사에서의 인간관계는 대부분 역할 기반이었다. 직책, 부서, 프로젝트라는 틀 안에서 만들어진 관계였기에, 그 틀이 사라지면 자연히 흐려질 수밖에 없었다. 퇴사 이후에도 연락을 이어가는 사람은 극히 소수였고, 그중 일부는 진심으로 나의 새 출발을 응원해주는 존재가 되었다. 오히려 진짜 관계는 회사를 나선 후에야 선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인간관계에 대해 이전보다 훨씬 담담해졌다. 퇴직 준비를 하며 겪은 이 현실적인 경험이 나에게 준 가장 큰 가르침은, 어떤 조직에 있든 ‘나’라는 중심을 지켜야 한다는 점이다. 회사는 나를 채워주지 않는다.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건 오직 나 자신뿐이다. 그래서 다음 직장을 선택할 때는 사람보다 구조를 보게 되었고, 사람을 믿기보다도 내 기준을 믿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인간관계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건 차가운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삶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