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을 준비하기 시작한 초반, 내가 예상한 가장 큰 어려움은 돈이나 경력 공백 같은 현실적인 요소들이었다. 하지만 막상 퇴사 후 준비 기간이 시작되자, 가장 먼저 흔들린 건 내 감정의 리듬이었다. 회사에 다닐 땐 자연스럽게 따라가던 출근과 퇴근의 규칙, 회의와 업무 마감의 압박, 점심시간 같은 구조들이 사라진 순간, 내 하루는 형체 없는 시간들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처음 며칠은 여유로웠다. 늦잠을 자고, 천천히 식사를 하고, 보고 싶었던 책도 읽었다. 그런데 그 여유는 오래가지 않았다. 점점 늦어지는 기상 시간, 하루 종일 이어지는 무기력, 무엇을 해도 집중되지 않는 상태가 이어지면서, ‘나는 지금 뭔가 잘못 가고 있다’는 경고등이 켜졌다. 준비 중이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나날 속에서 나는 점점 불안해졌다.
퇴사를 결심한 건 더 나은 삶을 위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그 결정을 실행하는 과정 속에서 내 일상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은 모순처럼 느껴졌다. 나는 일을 쉬고 있는 게 아니라, 인생의 다음 단계를 준비 중이었고, 그 준비는 단순한 ‘시간 보내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이 흐트러진 일상과 무너진 감정을 회복하기 위해, 나만의 루틴과 리듬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일상의 작은 습관이 무너진 감정의 기반을 다시 세워주었다
루틴을 만든다고 해서 거창한 계획을 세운 건 아니었다. 오히려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다시 시작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것, 아침에 창문을 열고 햇빛을 받는 것, 샤워 후 옷을 갈아입고 책상에 앉는 것. 이런 아주 작은 습관들이 모여 하루의 리듬을 다시 만들어줬다. 그리고 이 단순한 반복이 심리적인 안정을 회복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나에게 효과적이었던 건 ‘오전 집중 구간’ 설정이었다.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는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블로그를 쓰거나, 이력서를 정리하거나, 온라인 강의를 듣는 식이었다. 이런 고정된 시간 덕분에 ‘준비하고 있다’는 느낌을 유지할 수 있었고, 그 자체가 자존감 유지에 큰 도움이 되었다.
또 하나 중요했던 건 ‘하루 정리 노트’를 쓰는 일이었다. 하루가 끝날 때면 오늘 내가 한 일, 느낀 감정, 내일의 계획 등을 간단하게 기록했다. 처음엔 귀찮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이 습관이 나를 지탱해 주는 기둥이 되었다. 감정이 오락가락하던 날들도, 기록을 남기면서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었고, 반복되는 무력감에 빠지지 않게 해 주었다. 루틴은 단순히 일정 관리가 아니라, 감정의 안정 장치가 되어주었다.
몸의 루틴과 감정의 리듬은 생각보다 강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퇴직 전엔 몰랐지만, 일정한 루틴이 주는 안정감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출근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점심을 먹고, 퇴근 후에는 운동을 하거나 친구를 만나던 회사원 시절의 루틴은 나도 모르게 나를 붙잡아주고 있었다. 그런데 퇴직과 동시에 이 구조가 사라지자, 나는 작은 선택조차 어렵게 느껴졌고, 하루하루를 정리하지 못한 채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퇴사 후에도 일부러 ‘회사에 다닐 때와 유사한 구조’를 만들기 시작했다. 오전은 집중 작업, 오후는 정보 수집이나 콘텐츠 소비, 저녁은 정리와 휴식이라는 흐름으로 스케줄을 설정했다. 운동도 빠뜨리지 않았다. 매일 저녁 6시에 집 근처를 30분 정도 걷는 시간을 만들었고, 그 걷기 시간은 단순한 건강 관리가 아니라 정신을 정돈하는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수면 리듬이 회복되면서 나타났다. 불규칙했던 수면 시간을 일정하게 맞추자 생각보다 빠르게 집중력이 돌아왔고, 아침에 일어나서 무기력함 대신 약간의 기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몸이 규칙을 기억하자 감정도 함께 안정되는 경험이었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루틴이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내 감정과 삶을 연결해 주는 핵심 구조라는 걸 체감했다.
퇴사 후 준비 기간을 잘 보내고 싶다면, 반드시 루틴을 설계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퇴사를 결정할 때까지는 굉장히 치밀하게 계획한다. 하지만 정작 퇴사 이후의 일상 관리는 소홀히 하기 쉽다. 막연하게 ‘쉬면서 준비하겠다’고 생각하지만, 그 휴식이 곧 무기력으로 변할 수도 있고, 준비라는 말이 자칫 자기기만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퇴사 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삶의 리듬을 다시 세우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루틴은 목표를 위한 도구이자, 내 감정을 보호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이뤄내기 위한 시간 분배라는 기능을 넘어서, 내가 매일 같은 시간에 깨어 있고, 내가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기준이 되어준다. 루틴이 있는 사람은 불안할 수는 있어도 방향을 잃지는 않는다. 그게 퇴사 후 준비 기간에 가장 중요한 감정적 버팀목이었다.
지금 퇴사를 준비하거나, 이미 퇴사 후 다음 단계를 고민 중이라면, 우선 나만의 루틴부터 만들어보기를 추천한다. 처음엔 느슨하게 시작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하루의 구조’를 스스로 만들고, 그 구조 속에서 감정과 몸을 조율하는 연습을 해보는 것이다. 준비가 길어지더라도, 루틴만 있다면 흔들리더라도 다시 중심을 찾을 수 있다.
결국 퇴사란 회사에서 나오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삶을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루틴은 그 설계도를 완성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기둥이다. 그 기둥 없이 준비한다는 건, 방향 없이 바다에 나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퇴직을 준비하는 지금,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어쩌면 스펙이나 계획이 아니라, 내 하루를 구성할 하나의 심리적 루틴부터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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